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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교육탐방 뒷담화 (8)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교민 황풀잎씨와의 만남(상)
    카테고리 없음 2012. 5. 2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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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에 나와서까지 한국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은 짜증이 났다.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이 여행의 소중한 경험인데 한끼를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춘천에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인천공항까지 오후2시 비행기를 타고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12시간에 걸쳐 건너왔다. 그곳에서도 버스로 3시간을 달려 밤 12시가 다 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했다. 아직은 한국 음식에 대한 아쉬움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하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내 그 '한숨'은 '함성'으로 바뀌었다. 교민들과의 만남으로 수박 겉핥기가 될 수 있는 여행에 보석을 얻었기 때문이다. 교민들과의 만남은 여행을 3~4배는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교민 황풀잎씨. 한인회장을 3회나 연임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사는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아이를 너무 놀려요.

    교민 황풀잎씨. 이름도 특이하다. 예술계 쪽에 종사할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역시나 프랑스에 건너오기 전에 연극 배우였다고 한다. 그의 프랑스 예찬론에 와우하는 탄성이 이어졌다.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학생들의 방학숙제가 없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방학 숙제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개학이 다가오면 그동안 귀찮아서 미뤄놨던 탐구생활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프랑스에서는 그것조차 없다고 한다. 한국 생활에 익숙했던 20여 년 전 황풀잎씨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아이를 너무 놀리는 것 아니냐. 숙제가 없을 수가 있느냐.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냐."

     

     학교에서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방학동안 딱 3가지만 시키라는 것이다. 첫째는 잘 먹게 하라. 둘째는 잘 놀게 하라. 마지막은 잘 재워라.

     

     "그럼 공부는 언제 하느냐"고 화를 냈지만 '공부'는 학기 중에 하면 된다는 대답뿐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철학 과목을 우선 가르치는데, 이는 학생이 스스로 정체성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프랑스로 건너와 문화적 충격을 여러번 경험했다는 황풀잎씨. TV에서 어린 아이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입이 딱 벌어졌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경제상황이 어려운데 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느냐"의 질문이었다. 황당하다. 내 관점에서는 '어린애가 뭘 알겠냐'고 먼저 접근하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에서는 전혀 다르다. 어린 여자 아이는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는데 내용을 들어보면 더 재밌다.

     

     “정치하는 어른들이 잘못해서 그런 것 아니겠어요? 제대로 좀 하세요.”

     

     이런 식이다. 아이라고 혹은 사회적 약자라고 의견을 무시하지 않는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또는 인격체로서 그 의견은 충분히 존중받는다. 프랑스는 학교 구성원인 학생의 의견이 학교 운영에 반영되는 사회다. 16세까지의 의무교육 동안 수없이 많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한다. 남의 의견이 자신과 다르다고 중간에 끊는 법이 없다. 그럴 경우 교사에게 제재를 당하게 된다. 일단 아하 너의 생각은 그렇구나라고 말하고, 이쪽 의견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가지만 이 의견에는 반대한다는 식이다. 이것이 토론이다. 어릴 적부터 이런 토론 문화에 익숙하다. 자신의 의견을 내는데 거침이 없다. 수업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막 싸우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고 한다. 격렬한 논쟁 뒤에 얻은 지식주입식으로 얻은 지식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누누이 언급하지만 결코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 모두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내 자식은 주입식보다는 토론하고 논쟁하는 수업을 받길 원한다.

     토론이 재미있는 것이 그 학생의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남을 설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직접 경험을 해 보면 알 것이다. 기본적으로 여러 사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도 무척 어렵다우리 교육의 가장 아쉬운 점이다. 학생들은 똑똑한데 토론 문화에 약하다. 기본적으로 익숙하지가 않다.

     

     프랑스에는 사설학원이 없다고 한다. 아니 있어도 거의 보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필요가 없다. 공교육이 워낙 잘 돼 있기도 하고, 그만큼 공부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수준이 낮을 것이라고 착각하면 오산이다. 황풀잎씨는 프랑스의 고등학생은 한국의 대학생 수준으로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스트라스부르의 명문 장스튬 김나지움을 봐도 그런 점을 느꼈다. 우리의 대학생과 별반 차이가 없다. 자기가 학교 스케줄을 짜고 수업시간이 되면 학교에 나온다. 자유다. 물론 자유에 따른 책임은 크다.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진급을 할 수 없다. 평가 방식은 우리와 달리 절대평가다. 우리가 생각하는 흔한 오지 선다형이 아니다. 전부 주관식 평가다. 그것도 단답식이 아닌 에세이 평가다. 자신의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이슈에 대한 혹은 배운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어떤지를 글로 쓰고, 이를 평가받는다. 스스로의 생각을 정립하고 표현하는데 능숙할 수밖에 없다.

     

     이쯤되니 이곳의 고등학생이 나이들어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갔다. 독립성을 갖춘 성인이 된 것이다. 외모도 그렇지만 행동이 당당하다. 고등학생 대부분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등학생의 취업이 늘고 있지만 과연 그 이전에 스스로 자주성을 갖고 얼마나 많은 결정을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려진다. 고등교육만 받아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다 많은 자유와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인플레도 문제지만 역시나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이미 자유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깨우친 학생들에게 대학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대학진학 전까지 내가 과연 대학에 가서 연구를 더할 것인지 아니면 내가 하고자하는 일에 대해 전문성을 갖춰 나갈 것인지. 이미 주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인생인데, 고등학교만 졸업했다고 해서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이들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대학 진학 전까지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이 진정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시간은 충분하다. 방학숙제가 없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는 이유는 바로 사회 깊숙히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추측이지만 승자독식보다는 함께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듯싶다. 함께 나아가야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믿는 그런 사회 분위기가 느껴진다.

     

    다음 편에도 황풀잎씨와의 간담회에서 들은 이야기로 꾸며나갈 것이다. 프랑스 학생들이 얼마나 자율적인지 그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운동회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코카콜라에 스폰으로 음료수를 지원받는 모습 등등 감동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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