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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수한 맛 자랑하는 양양 영광정 메밀국수
    카테고리 없음 2014. 1. 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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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일보 1월 3일자 11면을 확인하시면 사진이 어떻게 나갔는지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보통 이렇게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추위에 떨면서 막국수 들고 계신 영광정 식구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벌써 지난해네요. 12월 마지막 주 토요일인 28일 양양으로 맛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주막이었던 장소였는데, 이를 이어 받아 40년 전통의 동치미 메밀국수를 이어오고 있는 양양 영광정메밀국수집입니다. 올해 강원일보는 신 강원기행 연재를 마감하면서 새롭게 100년의 맛 강원의 맛이라는 코너를 신설했어요. 새롭게 마련된 코너의 첫 장식을 영광스럽게도 제가 맡게 됐죠. 모든지 첫번째는 왠지 모를 부담감이 들어요. 그래서 더 잘 하려고 노력했는데 어쩐지 모르겠네요. 


    강원일보가 1월 1일자로 활자를 더욱 키워서 기사가 많이 들어가지 못하고 짤린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래는 기사 초고 원문을 옮겨놨어요. 그래도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글이니까요. 멘트 부분이 전부 빠졌더군요. 전체적인 맥락에는 변함이 없지만요. 그래도 아쉽잖아요. 춘천에서 2시간씩 걸려 다녀온 것인데요. 편집부 선배께서 너무나 예쁘게 제목도 딱 맘에 들게 편집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오래된 사진은 임정자씨의 시어머니와 시할아버지(사진 위쪽)의 모습입니다.


    오래된 사진은 임정자씨의 시어머니(윤함흠. 사진 오른쪽)와 시할아버지의 모습.





    >>3대째 이어온 손맛, 수수하고 소박해 더 끌린다

    (1)양양 영광정 메밀국수


     양양군 강현면 군도 1호선. 옛 속초공항에서 양양으로 가는 한적한 길가에 허름한 음식점이 있다. 바로 영광정 메밀국수. 석교리 마을 입구에 위치한 이 음식점 주변에는 진전사가 있고, 둔전 저수지와 계곡이 있어 휴가철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영광정 메밀국수는 옛날 집을 그대로 사용해 주막의 느낌이 든다. 구수한 메밀 육수를 시작으로 수수하고 소박한 메밀국수 한 그릇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토속적인 동치미 국물은 나름의 매력으로 단골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반세기 전통을 자랑하는 이 집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양양에서 철광석을 채굴하던 시기, 돈은 흔했지만 유흥을 즐길 곳이 없었다. 광부들은 술을 마실 곳을 찾던 중 주막을 발견한다. 이들이 찾은 이곳은 설악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대청봉을 배경으로 앞으로는 실개천이 흐르는 곳, 겸재 정선이 극찬하면서 그림으로 남겼다는 평양의 연광정을 꼭 빼닮았다.
     당시 주막에 들어앉은 이들이 ‘이곳이 바로 양양의 연광정’이라며, 현재 경주이씨 효열각 근방의 길거리에 ‘연광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마을에 전해지고 있다.




    경주 이씨 효열각의 모습. 영광정 바로 옆에 위치해 있습니다. 자신의 살점을 도려내 음식을 만들어 건강을 되찾게 하는 효행을 했다고 하네요.

     계곡이 흐르는 물갑리, 연광정의 사교리, 침교리, 석교리 등 여러 부락이 모여 있던 양양의 작은 시골 마을은 대관령을 오고가던 선비들이 잠시 머물던 주막이 즐비했던 장소였다.  

     주린 배를 채우고 막걸리와 함께 풍수를 즐기면서 긴 여정의 회포를 푸는 연회의 장소가 된 양양의 연광정은 지금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이를 유추할 수 있는 메밀국수집 ‘영광정’이 자리하고 있다. 주인은 1974년부터 연광정의 ‘연’을 부르기 쉽게 ‘영’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영광정의 시작은 한국전쟁 이전으로 추정된다. 당시 양옥순 씨는 홀로 주막을 운영하면서 국수와 막걸리를 팔았는데, 북한 함흥이 고향이었던 윤함흥 씨가 이 가옥을 구입해 이어받게 됐다. 간간히 막국수와 막걸리를 만들어 팔던 윤함흥 씨는 이후 며느리인 임정자(73)씨와 함께 본격적으로 메밀국수집을 운영해 왔고, 손자 이재덕(53) 씨까지 3대에 걸쳐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재덕 씨는 “연광정이라는 지명을 얻게 된 것은 양양 철광이 들어서면서 부터인데, 시기나 연도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일제 강점기라고 생각된다”며 “평양 대동강변에 연광정이라는 곳과 가히 견줄만한 곳이라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수수하고 은은한 매력을 지닌 막국수 맛
     편안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메밀국수. 수수하고 은은한 매력이 일품이다. 특히 영광정 메밀국수의 맛은 동치미 국물이 좌우한다. 영광정은 음식점 뒤편에 돌과 흙으로 옹벽을 쌓은 저장고를 만들어 적절한 습도와 온도 속에 동치미를 보관하고 있다. 살아 숨 쉬는 옹기 항아리에 담긴 동치미는 생기 있어 보면서도 아삭한 맛, 식재료가 가진 그대로의 맛으로 입맛을 돋운다. 부드러운 편육도 인기다. 백김치를 쌈으로 명태회와 함께 편육 한 점을 막걸리와 함께 입에 넣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양파를 갈아 넣어 만든 매콤한 양념장은 막국수의 맛을 끌어올리는 효자 구실을 한다. 국수를 삶는 데도 요령이 있다. 맑은 물에 삶아, 삶는 내내 저어줘야 면발이 고루 익는다. 헹굴 때가 중요한데, 물이 차가울수록 면발이 탱글탱글하고 쫄깃해진다.
     김규준(66·양양군 강현면 물갑리 이장)씨는 “몇 십 년을 먹으러 와도 맛이 한결같고, 순 메밀로 하다 보니 그 맛에 반해 자주 찾게 된다”며 “어린 시절 서너 명이 매달려 국수를 눌러 먹던 추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에 소개된 영광정 메밀국수집.    


     >>맛의 비결은 ‘한’
     1950년대 말 어린나이에 양양 침교리로 시집 온 임정자씨는 그 당시 어려웠던 삶을 회상했다. 남편 이동희 씨가 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어 모든 집안 살림을 홀로 도맡아야했다.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오면서 힘든 시절을 보냈다. 장을 돌며 야채장사를 하고, 생선을 사다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팔고 남은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다. 오남매에게 흰쌀밥 한 끼 마음 편히 먹이는 게 소원이었다는 임씨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에게 지독한 가난은 아직도 한으로 남았다. 이 한이 서민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는 국수의 맛으로 이어졌다. 모든 음식 재료는 손수 텃밭에서 키웠다. 눈을 뜨자마자 산에 올라 나무를 해오고, 아궁이에 불을 붙여 손으로 직접 국수를 눌러야 했다. 정직하고 한결같은 맛은 손님들에게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었다.
     1996년 7월 16일 임정자씨는 고유 전통 문화 보존에 힘써왔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전통문화보존회의 전통문화 보존명인장을 받았다.



    "어머님 하던 방식 그대로 어디서 배운적도 없어요"

    -임정자 사장 인터뷰 


      “맛? 토속적으로 그냥 어디서 그거 하는 거 없이 그대로 유지하는 거지.”
     영광정 메밀국수 사장인 임정자(73)씨는 “텃밭에서 야채 고추 모든지 다 심어서 스스로 해서 동치미 다 담그고, 김치 같은 것도 열무를 심어서 만들었다”며 “맛이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또 “메밀은 구수한 맛이 있고, 몸에 노폐물을 해소해서 사람들이 농사짓고 우리 집에 와서 꼭 막국수를 먹고 갔다”며 “일단 속이 편안하고, 소화도 잘 되는 것 같고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우리 어머님은 국수 누르는 걸 시집오기 전부터 알았는데, 어머니 하는 걸 보고 하는 것이지 어디서 배운 적도 없다”면서 “반죽하는 과정이 제일 중요하고, 알맞은 온도에서 삶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보낸 임정자씨. 그는 함께 나눴던 정을 정성스럽게 맛있는 음식으로 보답하는 긍정의 선순환을 통해 영광정 전통의 맛을 유지하고 있다.
     임 씨는 “어려웠던 시절부터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며 “도움을 받고 이때까지 사는 것이지 도움 없이 못산다. 그렇게 계속 장사를 해왔고, 살아왔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상태기자stkim@kwnews.co.kr




    2013년 12월 28일 오후3시쯤 속초해수욕장.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네요. 4미터 정도 되는 파도가 멋졌어요. 너울성 파도같아서 방파제쪽은 위험해 보이더군요.



    이날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취재는 오후 3시쯤 끝난 것 같군요. 양양까지 왔는데, 바다도 안보고 간다면 뭔가 허전하죠. 후배 차를 타고 속초해변으로 향했습니다. 당시는 새해가 아니었지만 미리 새해 다짐도 해봤네요. 앞으로는 더 좋은 글 많이 쓰겠다고. 청마의 해 푸르게 질주를 해보겠노라고. 바다 바람이 칼 바람이었지만, 그래도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 안구 정화하고 왔습니다. 


    내 아내, 딸, 아들. 가족과 함께 왔더라면 더 좋았을 걸. 회도 한저름 먹고. 에고 안타깝네요.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죠. 기사 보고 손님들도 많이 와서 기사 이야길 하셨다고 하니 기분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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