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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레길의 창시자 서명숙의 식탐
    카테고리 없음 2012. 12. 2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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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탐 / 서명숙 / 시사IN북

     

     제주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오랜 세월 글을 써왔던 양반이다. 인생 한번 멋있게 산다고 부러워 했는데, 드뎌 <식탐>이란 책을 통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서명숙 인생의 최대 화두는 딱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글, 길, 맛이란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고 끈질긴 열망은 바로 맛나는 걸 먹는 것이었다고 한다. 서두를 읽어보니 어떤 맛인지 궁금해졌다. 음식 레시피를 기대하면 안된다. 아버지의 음식 두부를 시작으로 그가 올레길을 만들 수 있었던 계기가 된 뽈뽀 등 다양한 맛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뽈뽀는 문어요리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한 여성과 만나 먹은 뽈뽀로 인해 서명숙은 올레길을 만들어 냈다. 그 덕분에 10여시간 이상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도착할 수 있는 스페인에 가지 않더라도 걷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올레를 쉽게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날 가자미 요리와 와인의 맛이 절대적인 기준에서 최고급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음식이나 술은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먹고 마시는가에 따라 그 맛을 달리한다." (식탐 中 114페이지)

     

    서명숙씨가 한 매체에서 정치부 기자를 했을 당시, 불편했던 식사에 관한 기억을 털어 놓았다. 늘 긴장하면서 주요 정치인들의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지를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맛나는 음식이 나와도 맛 자체를 즐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분명히 밥을 먹긴 했는데, 허기가 져 또 참을 먹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때 이후로 식사는 편안하고 여유롭게 즐기기로 결심했고, 이 때문에 같은 회사 직원과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는 상대이면 밥을 함께 먹지 않았다고 한다.

     

     한끼는 대충 떼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한끼를 먹더라도 천천히 편안하게 먹고 싶어졌다. 이전에 요리를 배우려했는데, 그건 포기했다. 고향의 맛이 최고인 듯하다. 어머니가 순두부집을 했었다. 고향손두부라는 이름이었다. 그 시절 두부를 많이 먹었는데, 그 부드러운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가끔 엄마는 손수 두부를 만들어 주시는데. 갑자기 그 맛이 그리워졌다. 그동안 못난 아들 키우시느라 속앓이도 많이 하셨을텐데. 그러고 보니 음식은 소통이라는 생각을 했다.

     

     서명숙은 맛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글이 읽기 편하다. 이런 보석을 만나면 가끔 왜 그동안 난 책을 많이 읽지 않았을까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지금이라도 책읽는 재미가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보물이다. 고작 3~4시간 투자해서 글쓴이의 인생을 엿볼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을 마구 초월한다. 신기하다. 활자로 인쇄된 매체를 싫어할라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 책을 통해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마치 내가 서명숙이 된 것 같다. 제주도로 날아가서 할망의 쉰다리를 마시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아직은 맛을 모른다.

     

     제주도에 가면 할망의 쉰다리를 꼭 마시고 싶다. 알코올도 없는데, 한모금 마시면 핑한 기운도 돈다고 한다. 사실 난 요리보단 술에 관심이 더많다. 이러다가 간에 이상이 오는건 아닌가 싶다. 술은 기분 좋을 때만 마시려고 하는데 요즘 세상이 그냥 놔두지 않는다.

     

     서명숙은 대형마트보다는 재래시장이 좋다고 한다. 재래시장에 가면 사람 냄새가 나서일까? 대형마트는 다양한 것이 잘 구비돼 있다. 쇼핑도 편리하다. 창고에서 필요한 물건에 카트에 담고 카운터에 가서 계산하면 된다. 기억에 남는 건 비닐봉지 드릴까요라는 물음뿐이다. 전통시장에 가면 사람이 있다. 식재료를 사면서 간단한 레시피도 얻을 수 있고, 그날 생각했던 요리가 상인의 권유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서명숙의 생각에 완전 동의할 순 없다. 나도 재래시장에 몇번 가봤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바가지만 쓰게 마련이다. 남자이고 소통이 익숙하지 않다. 온통 중국산이 난무한다. 그냥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만 든다.

     

     이전에는(내가 딸을 낳기 전에는) 내 성공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보단 우리 아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겨났다. 난 그냥 대충 살아도 내 아이만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니까 더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마음은 모든 부모의 마음일거다. 내 딸이 사람이 행복한 세상에 살게 하고 싶다. 우리 사회는 너무 빠르다. 특히 휴대폰은 정말 적응이 어렵다. 신상품은 넘쳐나고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휴대폰 점유율에서 노키아를 제치고 전세계 1위에 올랐다는 언론보도를 봤다.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경쟁의 사회에서 또 다시 그런 경쟁을 해야 하는 내 자식이 안쓰럽다. 부족한 부분은 서로 돕는 함께 행복한 세상이 그래서 더욱 필요한 듯 보인다.

     

     김훈 작가가 한림대에서 강연을 했을 때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고기를 잡으러 간 어부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라면을 끓여놓으라고 말한다. 어부는 뜨거운 라면에 소주 한잔을 마시면서 몸을 녹인다. 그 순간 딸에게 전화가 온다. 그래 아빠는 잘 있지, 감기 안걸렸어. 너도 몸조리 잘하거라. 맛있는거 챙겨먹고. 휴대폰의 놀라운 발견이다. 글을 쓸 때도 펜을 사용한다는 김훈은 전자기기를 지극히 싫어한다고 한다. 자동차 이런 것도 싫다고 한다. 그날은 전자기기지만 소통의 놀라운 수단인 휴대폰을 새롭게 발견한 거다. 휴대폰은 소통으로서의 전자통신기기이다. 목적과 수단이 자주 뒤바뀌는 듯하다.

     

    서명숙의 아날로그 글이 부럽다. 내가 제일 부족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처럼 먹으멍 세상을 떠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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